쓸데없이 오해하는 이유
가다머의 해석학
“그 뜻이 아니었는데…”
“왜 내 말을 그렇게 받아들여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말보다 감정이 먼저 부딪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분명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데,
전혀 다른 의미로 엇갈리죠.
이때 우리는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해는 이해의 일부이다.”
즉, 이해는 완성될 수 없고,
항상 ‘차이’를 안고 있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 이해는 ‘사실’이 아니라 ‘사건’이다
가다머의 해석학(Hermeneutik)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우리가 대화를 통해 진리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간다고 보았습니다.
즉, 이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두 세계가 만나는 사건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오늘 참 덥네요”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단순히 온도에 대한 객관적 진술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피곤하다”, “쉬고 싶다”, “대화하고 싶다” 같은
수많은 뉘앙스가 숨어 있죠.
따라서 대화란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예술입니다.
그리고 모든 해석에는
오해의 가능성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 우리는 모두 ‘선이해’를 가지고 있다
가다머는 말했습니다.
“이해란 선입견(先見)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는 선입견을 나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해의 출발점이라고 했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험, 문화, 가치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걸 가다머는 ‘선이해(Vorverständnis)’라고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말을 들어도
부모, 연인, 동료가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오해는
상대방의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니라,
각자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진정한 이해는 ‘해석의 융합’이다
가다머는 완전한 이해를 “불가능하지만 추구해야 할 목표”로 봤습니다.
그는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죠.
“이해란 서로 다른 세계의 지평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즉, 당신의 관점과 나의 관점이
서로를 바꾸지 않으면 이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의 관점이 확장되는 경험’이 진짜 대화입니다.
따라서 오해는 대화의 실패가 아니라,
이해의 전조입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진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 쓸데없는 오해를 줄이는 철학적 태도
이해하려는 의지보다, 열려 있으려는 태도.
대화의 목적은 설득이 아니라 공명입니다.
“내가 맞다” 대신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시작하세요.
상대의 말보다 맥락을 듣기.
말의 표면보다, 그 말을 하게 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말의 온도는 문장보다 맥락에 있습니다.
자신의 선입견을 자각하기.
“나는 왜 저 말을 불편하게 들었을까?”
이 질문이 바로 해석학의 출발점입니다.
가다머는 이해를 ‘정답 맞히기’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대화는 진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흐름에 참여하는 일이다.”

💡 결론: 오해는 이해로 가는 통로다
우리는 종종 ‘오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다머라면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오해하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오해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라.”
오해는 대화의 적이 아니라,
다른 세계가 부딪히는 증거입니다.
그 마찰이 없으면,
이해는 단순한 복사에 불과하죠.
따라서 ‘쓸데없는 오해’란 없습니다.
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이해의 과정일 뿐입니다.
오늘의 불편한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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