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원하는 인간은 누구인가?
푸코의 규율권력
“요즘 회사는 능력보다 태도를 본다.”
“자율이라고 하지만, 다 보고 있잖아요.”
“성과주의라면서 감정노동도 평가하죠.”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이런 말을 해보셨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규칙보다 더 강력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와 ‘시선’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이런 사회의 작동 원리를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라 불렀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권력은
억압하는 대신 스스로 복종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 규율권력이란 무엇인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권력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다. 순응적인 신체를.”
그는 감옥, 학교, 병원, 군대, 그리고 직장을
‘규율 공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통제하지 않아도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사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야근
평가를 의식해 “열정”을 연기
‘회사 사람’답게 말하고 행동
이것이 바로 규율권력의 성공입니다.
감시받지 않아도 감시받는 듯이 행동하는 인간,
그게 푸코가 말한 현대의 ‘순응적 개인’입니다.

👁️🗨️ 감시 대신 ‘시선’이 지배한다
푸코는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감시탑 구조를 통해 이 메커니즘을 설명했습니다.
“누가 보고 있는지 몰라도,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사람은 순응한다.”
오늘날의 회사는
감시탑이 없어도 직원의 행동을 기록합니다.
- 근무 시간, KPI, 메일 로그
- 회의 태도, 협업 점수, 리더십 평가
모두 데이터로 환원된 인간의 형태죠.
그 안에서 직원은
‘회사에 맞는 버전의 나’를 끊임없이 생산합니다.
이제 권력은 외부에서 주입되지 않습니다.
내 안으로 이식되어 작동합니다.
🧩 ‘자율’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규율
오늘날 회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율과 창의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 “자율적으로 책임을 져라.”
- “창의적으로 결과를 내라.”
- “스스로 동기부여하라.”
이 말은 듣기 좋지만,
사실상 스스로를 통제하라는 요구입니다.
자유로운 척하지만
그 자유조차 성과로 측정되는 구조 속에 갇혀 있죠.
푸코식 해석으로 보면
이건 억압의 반대가 아니라
훨씬 효율적인 통제의 진화된 형태입니다.
“권력은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의 몸과 행동에 스며들었다.”
🧩 회사가 진짜 원하는 인간
회사가 원하는 사람은
단순히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조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기준이 바뀌면 재빠르게 적응하고
평가를 스스로 내면화하며
불만을 느끼면서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사람
즉,
“회사 밖으로 나가도 회사의 원칙대로 움직이는 사람.”
이것이 푸코가 경고한
규율사회의 최종 결과입니다.
통제 없는 통제, 자발적 복종의 세계.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푸코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런 힌트를 남겼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규율의 경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 선택하는 일이다.”
그 말은 곧,
회사와 싸우기보다
자기 내면의 시선을 되돌려보라는 뜻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완벽해야 한다고 느끼는가?”
“이 기준은 정말 내 것인가?”
“나는 일의 주인인가, 평가의 피조물인가?”
이 질문들이
규율권력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게 만드는
철학적 저항의 시작입니다.

🕊️ 결론: 회사의 시선보다 나의 철학으로
현대 회사는 ‘열정’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효율적인 톱니바퀴로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 이유는
기계처럼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직원’이 되기 전에
‘나다운 인간’으로 남는 것,
그게 진짜 철학적 용기 아닐까요?
푸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만들라.”
규율이 있는 곳에도
자유의 숨결은 남아 있습니다.
그 숨결을 잃지 않는 것이,
우리 시대의 *‘잘 일하고 잘 살아가는 철학’*입니다.
'D. 현대 철학 & 사회 문제 (Philosophy & Societ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워라밸은 왜 싸움이 될까 마르크스의 소외 (0) | 2025.12.10 |
|---|---|
| 알고리즘이 나를 선택하는가, 내가 선택하는가 — 실존의 주체성 (0) | 2025.12.10 |
| 관계가 ‘구독’이 되는 사회 바우만의 액체 근대 (0) | 2025.12.09 |
| 댓글 전쟁에 철학은 가능한가 하버마스의 소통 이론 (0) | 202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