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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현대 철학 & 사회 문제 (Philosophy & Society)

워라밸은 왜 싸움이 될까 마르크스의 소외

by 커넥티드마인드 2025. 12. 10.

워라밸은 왜 싸움이 될까 — 마르크스의 소외
일과 삶이 적대가 되는 이유

요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워라밸이 안 돼요.”
“일이 내 삶을 다 잡아먹어요.”

하지만 이 ‘워라밸’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일’과 ‘삶’이 서로 분리된 것,
더 나아가 서로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죠.

왜 우리는 일할 때 삶을 잃고,
살 때는 일의 죄책감을 느낄까요?

이 질문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답을 내놨습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에서 소외되었다고 말했습니다.

⚙️ 노동에서 인간이 멀어질 때

마르크스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소외(Entfremdung)’입니다.
그가 말한 소외는 단순한 외로움이 아닙니다.
그건 자신이 만든 결과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는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노동은 노동자에게 외적인 것이며, 그 본질의 상실이다.”

즉, 우리가 노동을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느끼는 순간,
소외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 회사에서 우리는 ‘성과’와 ‘지표’로 존재합니다.
노력은 숫자로 환원되고, 시간은 생산성 단위로 나뉘죠.
결과적으로, 노동은 내 삶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타인의 목표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그럴 때 인간은 자신을 잃습니다.
일이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를 소모시키는 타자’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 워라밸의 역설 — ‘균형’이 아닌 ‘분리’의 논리

현대의 워라밸 담론은 겉으로는 자유와 자율을 말하지만,
사실은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과 삶을 구분하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은 힘들고, 삶은 쉬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분이 선명해질수록
일은 더 견디기 힘든 타자가 되고,
삶은 점점 피로를 푸는 ‘회복소’로 축소됩니다.

결국, 일도 삶도 서로에게 원망의 대상이 됩니다.
일이 삶을 빼앗는다고 느끼고,
삶이 일을 방해한다고 느끼는 것.

그건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일’과 ‘삶’이 서로를 공격하는 순간,
그 둘의 주인인 ‘나’는 사라집니다.

🌿 일은 원래 ‘자기 표현’이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단순한 경제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표현적 존재(species-being)’로 봤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물은 즉각적인 욕구를 위해 일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일한다.”

즉, 노동은 원래 삶의 연장선이자 자기실현의 행위였습니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그것을 ‘타인의 이익을 위한 행위’로 바꿔버렸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워라밸’이 싸움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일’을 나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이 내 가치와 연결되지 않으면,
그건 곧 ‘타인의 시간에 갇힌 나’가 됩니다.

🔧 워라밸을 넘어 — ‘일과 삶의 화해’를 위하여

워라밸을 진짜로 회복하려면
균형(balance)이 아니라 통합(integration)이 필요합니다.

‘일’이 나의 표현이 될 때,
삶은 더 이상 도망이 되지 않습니다.

‘삶’이 에너지를 주는 공간이 될 때,
일은 나를 소모시키지 않습니다.

즉, 일과 삶의 관계를
‘싸움’에서 ‘대화’로 바꿔야 합니다.

그 시작은 질문 하나로부터 출발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소외에서 한 발 벗어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노동의 주체가 자신으로 돌아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 결론: 워라밸의 철학은 ‘소유’가 아니라 ‘의미’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워라밸의 진짜 문제는 ‘시간의 분배’가 아니라 의미의 결핍입니다.

내가 일하는 이유를 모를 때,
일은 고통이 되고,
내가 쉬는 이유를 모를 때,
쉼은 공허해집니다.

일과 삶의 대립은 사실,
소외된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상태일 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 속에서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 마르크스

결국, 워라밸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일을 다시 ‘나의 일’로 되찾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